목회 서신


[목회서신] 인간 (2024.4.7) 한상훈 목사

Author
Staff
Date
2024-04-05 14:08
Views
87
꽤 오래 전에 한 코미디언이 남긴 유행어가 떠오르네요. “인간이 되어라~” 그 말은 인간답지 못한 사람이 많은 시대를 비꼬아서 한 말 이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 됨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틀려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참 신비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성적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는 간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하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언제 그래냐는 듯이 적대적 관계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미글리오라는 신학자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램브란트와 같으면서도 히틀러와 같고, 모차르트와 같으면서도 스탈린과 같고, 안티고네와 같으면서도 멕베스 부인과 같고, 룻과 같으면서도 이세벨과 같다.” 인간 안에 있는 이중적 모습을 적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섹스피어는 인간을 “참으로 놀라운 예술 작품”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이해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면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합니다. 그 해석들 가운데서 인간을 하나님과 타자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다른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존재입니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타자와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배움과 성숙을 위해 필요한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타자와의 다름을 통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임을 깨달아 타자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윤리적 존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라기 보다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며 성숙해 나가는 책임적 존재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거스틴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그의 글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은 그가 알고 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오로지 사랑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선한 사랑은 그를 선하게 만들고 악한 사랑은 그를 악하게 만든다.” 어거스틴은 사랑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든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간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인간됨은 주님과 깊은 사귐을 통해 그분을 닮아 갈 때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고 주님의 삶을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낼 때 인간이 누구인지를 비로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새피조물로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