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서신


[목회서신] 칭의 (2024.4.28) 한상훈 목사

Author
Staff
Date
2024-04-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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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말은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칭의의 교리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 의해서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행위 가운데 가능합니다. 그 하나님의 일 하심은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칭의는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we are justified by grace through faith 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시는 그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 꿇는 것입니다. 완전한 굴복이자 완전한 순종이 믿음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안에 전제된 것이 겸손입니다. 내 자신을 온전히 십자가 앞에 내려놓지 않고, 주님 앞에서 죽지 않았다면, 나의 겉모습은 믿음이 있어 보일지라도 그 안에 굴복, 순종, 그리고 겸손이 없기에 믿음의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시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인정에 대한 욕구가 부정적 형태로 부각되어져 나온 모습이 중독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갑자기 불어닥치는 삶의 무의미, 무가치함, 사회 안에서 겪게되는 냉정함 등이 수 많은 종류의 중독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갑니다. 

이런 현대인이 겪고 있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는 어떠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 그 실마리를 칭의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칭의를 이 시대에 맞게 재진술한 폴틸리히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당신은 용납되었습니다”라는 설교에서 “당신이 이미 용납되었다는 사실을 당신보다 더 큰 힘에 용납되었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할지라도 그 부정적인 평가가 우리의 존재 가치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역시 자신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온갖 비난의 목소리를 퍼붓고 우리를 폄하해도 우리는 여전히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헤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칭의의 교리가 주는 큰 가르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