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서신


[목회서신] 고통 (2024.3.24) 한상훈 목사

Author
Staff
Date
2024-03-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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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이 고난주간에 고통에 대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고통은 참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고통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고통은 너무나 현실적이면서 사실적입니다. 누구나 고통을 당하면 힘이 듭니다. 그 고통이 아무런 이유없이 찾아오면 견뎌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면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빅터 플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정권에 의해 유대인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분입니다. 그는 모두가 쉽게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 상황 가운데서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그 어떠한 극한 고통의 현장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뜻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 안에서만 안정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떠나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실존이 바로 불안입니다. 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행동을 취한다고 라인홀드 니버라는 신학자는 분석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자신을 절대화함으로 불안을 극복하려 합니다.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은 인간이 교만해진다는 뜻입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 자신의 실존적 문제인 불안을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은 유한한 것들을 탐닉함으로써 불안을 잊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술취하고 폭식하며 성적으로 방탕하고 사치하며 탐욕을 부리는 행태들을 말합니다. 이런 탐닉으로 잠시동안은 근원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후에 다시 불안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이 두 가지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내적 불안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 정권에 대항해 싸우다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로지 고통당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Only the suffering God can help).” 자신이 직접 고통당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희생적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분의 사랑은 우리 삶 가운데 여전히 살아 역사하십니다. 극한의 고통을 통해 깊은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깨달은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우리의 눈이 열려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고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